어른은 어린이의 맑은 두 눈을 보면 부끄러워진다. 사람의 마음이 밝으면 눈도 맑다는 말이 떠오르는 것이다. 마음이 맑다는 것을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이다. 부끄러움이 없는 삶보다 더 귀한 인생의 선물이 있겠는가. 그러나 어느 사람이나 부끄러움을 안고 산다. 살다 보면 못할 짓을 범하고 몹쓸 마음을 부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믿음을 의심으로 갚아 마음이 아프고 부끄러운 경우도 있고 사랑을 미움으로 갚는 어리석음도 범하며 약속을 어기고 변명을 하는 얌체 짓을 범해 수치를 둘러쓰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왜 이렇게 인간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범하면서 스스로를 부끄럽게 하는가? 믿음이 소중함을 잃은 탓이고 올바른 삶의 이치를 잊은 탓이기도 하고 서로 친밀한 정을 나누는데 인색해진 탓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탓들로 가장 아픈 상처를 인간이 앓는 징후는 사람이 말을 믿지 않으려는 의심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기 마련이다.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없는 세상만큼 무서운 세상은 없다. 말이 곧 믿음이 되고 그 믿음이 행위로 이어진다면 어느 것 하나 사랑함으로 통하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말을 서로 주고받으면서도 그 말을 서로 못 믿어 무슨 증거로 담보를 잡아 두려는 세태를 이제는 아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긴다. 말보다 도장을 더 믿는 세상은 믿음과 올바름, 그리고 친밀함이 모자란 결과이다.

무엇이 정말이고 무엇이 거짓말인가? 말과 행동이 맞지 않을 때 거짓말이 되고 맞아들면 참말이 된다. 그래서 행동과 맞아들지 못할 말은 하지 않아야 하므로 말보다 침묵이 정작하다고 하는 것이다. 참말을 하면 오히려 믿지 못하고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것은 결국 삶이 거짓투성이란 것을 증언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사람이 못 살고 악한 사람이 잘 산다는 생각을 지니면서부터 인간은 악을 행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기가 쉽다.

세상이 모두 도둑의 소굴인데 누가 누구를 도둑이라고 흉을 볼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자탄하는 것은 얼마나 괴롭고 슬픈 일인가? 어느 놈치고 털어 먼지 안 나는 놈이 있느냐고 삿대질을 하는 인간 군상은 타락할 대로 타락해 무엇이 믿음이며 무엇이 올바름이고 무엇이 친밀함인가를 모른다. 이러한 망각의 탓으로 인간은 잔인한 동물이 되어 힘만 믿고 설치는 현실을 삶의 현장으로 만들어 내는 중이다.

참으로 불행한 세상은 지도자란 사람을 썩을 놈으로 여기는 세상이다. 도둑놈이 되려면 정치가를 하고 모리배가 되려면 장사치가 되라고 저주하는 말들이 사람들 입술에 떠나지 않는 세상을 말세라고 한다. 이러한 말세를 무슨 수로 고친단 말인가? 먼저 인간을 고쳐야 할 것이다. 어떻게 고치는 길로 들어설 수 있을까? 스스로를 반성하는 일에서 그 열쇠를 찾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